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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솔까말] [10] 슬픈 기억 (응아)
물꽃 | 2011-05-12 | 2577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연대 필진 환영! 무한 링크, 스크랩, 펌, 배포 권장!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⑩ 슬픈 기억


 응아


슬픈 기억. 겉으로는 아무도 모르고 자국도 없는데 그것의 상처는 치유를 거부하며 평생 갚아도 갚지 못할 부채감과 죄책감에 일상이, 평생이 우울하다. 1986년 겨울 20대 청춘 신촌의 쪽방자취시절 하루 종일 일하고 저녁이면 음주가무하고 한 남자가 내 집으로 기어들어와 살게 되고 임신을 했다. 술과 담배의 푸대 자루 속에 생긴, 감기 몸살로 장기복용하고 있는 항생제 속에 잉태한 핏덩이. 나보다 나이도 어렸고 학생이었던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 보지못 했고“ 나 보고 어째 라고,”이런 식이다. 온전히 고민과 결정은 나의 몫이었다. 내 몸에 일어난 일이므로... 나는 그 핏덩이에게 한파라고 이름 짓고 “한파야 춥지.,어떡해”하며 많이울었다. 매일 울었다. 작고 허름한 산부인과에서 5만원을 주고 핏덩이를 쏟아내고 혼자서 도망치듯이 뒤도 안돌아보고 집에 왔다. 내내 중얼거리면서 ‘한파야,,한파야...“


두 번째 자행된 내 살 뜯기는 그 남자와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이 년 후 겨울이었다. 임신이구나...라고 느꼈을 때, 온 몸에 쫙 소름이 돋았다. 그래서 소름이라고 불렀다. 난 직감했다. 내가 몹쓸 짓을 또 할 꺼 라는 걸... 전화 속의 남편은 ”알아서 해“라고만 했다. 우리는 너무 가난해서 키울 능력이 안 되는 무능력자였다. 그리고 세상이 무서웠다. 시간 끌 수 없는 결정이었다. 겨우 돈을 빌렸다. 아이를 들쳐 업고 화곡동 대로변의 거대한 산부인과를 지나치고 빨간 벽돌산부인과도 지나고, 시장 통 상가 건물 이층의 산부인과에서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재운 뒤에 시술을 받았다. 지우개처럼 지우는 것도 아닌데 그렇게 소름이는 지워졌다. 남편은 며칠 들어오지 않았고 그 후 예비군 훈련에 가서 정관 수술을 받았다. 사시사철 추위를 타는 나는 항상 죄인이다. 무지해서 미안하고 능력 없어서 미안하고, 나만 살고 있어서 미안하고, 너희를 지우고 없애서 미안하고, 군대 간 아들에게도 외롭게 만들어서 미안하고, 진정 내가 어미여서 미안하다...


세상에 낙태를 즐길 여성은 없다. 다 피치 못 할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을 때 하는 결정이다. 임신하면 무조건 낳아야 된다는 것은 그녀들의 인권침해, 권리 박탈, 여성을 출산과 육아에 묶어 두려는 가부장적 발상이며 시대에 역행하는 제도이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엄청난 수고와 희생인데 육아를 전적으로 국가에서 책임 질 수 없다면 낙태 역시 개인의 자유의지 아닐까? 낙태를 하는 당사자는 살이 에이고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해야한다. 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하는데 그 선택조차도 할 수 없게 만든다는 것은 더 많은 부작용과 병폐를 낳을 것이 불 보 듯 빤하다. 


*편집자의 주) 이 글을 받고 한참동안 마음이 잡히지가 않았습니다. 한 여성의 삶에, 몸에 오롯이 새겨진 그 기억의 이야기들이 제 곁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 기억에서 우리는 어쩌면 평생 자유로울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또한 우리는 삶을 살아갑니다. 아픈 마음을 안고, 그렇게 말이죠. 수많은 상처들이 조각조각 이어져 만들어낸 이 이야기 앞에서, 법의 잣대가 얼마나 무의미한지... 우리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삭제해 버리고 처벌의 잣대만을 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생각하게 됩니다.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나눠 주신 응아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솔직히, 당신도 하고픈 말 있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한 꿍꿍이였습니다. 어쩌면 생뚱맞을지도 모를 우리의 말걸기가 과연 화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또 함께 말하고 싶은 분들은 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일기나 낙서면 어때요. 그림이나 사진,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말하기를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말하기가 낙태에 대한 처벌과 낙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 께. 말. 해.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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