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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솔까말] [9] 여성청소년이 바라보는 낙태 (2.9)
나영 | 2011-03-18 | 1800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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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⑨ 여성청소년이 바라보는 낙태

                                                                     쩡열(교육 공동체 나다)



                                                             (그림: 공기)

내 인생의 첫 임신공포

나는 낙태경험이 없는 여성청소년이다. 그러나 생리하기 전 낙태라는 단어를 머리 속에 달고 살고 있다. 낙태와 임신은 나에겐 거의 동의어로 존재하고 있으니까.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난 낙태라는 건 정말 소수의 사람들이 어쩌다 하는 무언가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버스와 전철의 성추행이 아닌 강간의 위협을 느꼈을 때에 피임과 낙태 임신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히기 시작했다. 16살 때 즈음 혼자 배낭을 메고 한 달간 터키를 다녀오게 됐을 때에 엄마가 나에게 혹시 위험한 일(아마 강제적인 성폭력 상황)이 생기게 되면 내밀라며 콘돔을 챙겨가란 말을 할 때는 됐다고 뭐 그런 일이 있겠냐고 이야기하기 한 달 뒤의 이야기였다. 지금 생각하면 뭐 챙겨가지 그까이꺼 하겠지만, 그 때에는 콘돔이라는 건 뭔가 흉측스러운 물건이었으니까 싫었다. 그리고 그 삽입 직전의 강간상황에서 내가 깨달았던 건 저런 놈들이 콘돔을 내민다고, 아 그렇군.. 하며 흔쾌히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 콘돔을 착용하고 나의 피임을 걱정해줄 놈들은 아니겠구나 정도? 그 이후 내 인생의 첫 연애에서는 섹스까지 갈 위험이 있는 스킨십을 절대적으로 차단했었고, 그리고 얼마 뒤 곧 첫경험도, 섹스도 자연스러운 일들이 되었다. 

왜 여성청소년들은 사회에게 남성에게 성적자기결정권을 빼앗긴 거지?

하지만 피임에 무지했던 건 확실하다. 비청소년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청소년들은 임신에 대한 두려움, 낙태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만 피임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남자놈들이야 뭐 콘돔착용조차도 귀찮아하는 일이 태반이지만 여성청소년이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피임은 말 밖에 없다는 기분이 든다. ‘임신하면 안돼’ ‘콘돔 꼭 써줘’ ‘하지마’ 라는 말들. 

아직도 편의점에 가서 내 손으로 콘돔을 사는 일은 꺼림칙하다. 피임약을 사려고 약국에 가는 것도 차마 못하겠다. 피임약을 먹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은 것도 알아보고 싶은 것도 상담해보고 싶은 것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 사회에서 성적자기결정권을 강탈당한 청소년이기 때문에 내가 부끄럽지 않아도 산부인과, 편의점, 약국 그 어느 곳에도 알리고 싶지도 묻고 싶지도 않다. 이 중 어떤 상황에서라도 그들이 나의 나이를 물어보고 민증을 요구하는 (물론 묻는 곳도 안 묻는 곳도 있겠지만 물어보았을 때의 나의 당황이 떠오른다.) 그 상황과 눈빛들이 끔찍하니까 아무리 임신을 걱정하고 낙태를 걱정해도 결국 우리들의 피임은 콘돔이 한계인 게 현실이다.

성욕은 청소년에게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연애도 존재하고 섹스도 존재한다. 인정할 걸 인정해서 덜 위험한 상황으로 만드는 게 맞지 무조건 막는다고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서 법으로 모든 시민의 섹스를 금지한다고 법을 만들고 돌을 던진다고 성욕이 존재하지 않아지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청소년들의 성적자기결정권 이야기에 그렇게까지 심하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건 그쪽의 정신건강에도 좋지 않고, 청소년들의 현실에도 전혀 도움되지 않는다.

물론 청소년들의 섹스를 인정하고 성적자기결정권을 인정한다고 하면 위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수도 있고, 더욱 자연스럽게 성폭력의 상황들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권리를 강탈당한 현재도, 비청소년들의 세계에도 성폭력의 상황들은 충분히 많다. 그런 성폭력들이 두렵다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남성중심주의라던지 성에 대한 비상식적인 시선들을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더 옳지 않을까?

누구 맘대로 누구한테 뭘 강요하는 거지?

한 공부모임에서 페미니즘을 이야기 할 때에 낙태가 주제였던 적이 있다. 난 그 때 처음으로 낙태를 경험한 여성이 정말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태아의 생명권을 근거로 낙태를 반대하는 이들과 여성의 신체의 권리를 근거로 하는 이야기 사이에서는 갈 곳을 못 찾았었다. 그러게… 생명을 쉽게 죽이는 건 나쁜 거 잖아… 하며 흔들거리는 내 머리를 진정시킨 건 다름아닌 ‘왜 그 아이를 낳아서 한 사람의 인생을 책임지게 될 그 사람에 대한 생각은 아무도 해주는 않지?’ 였다. 

임신을 하게 되면 상대방 남성도 부담을 느낀다고 한다 (느껴야 한다 허허). 하지만 모를 것이다. 생리할 무렵이 되면 고작 하루 이틀 늦어지는 현상에 끊임없이 불안해 하며 피가 난자한 꿈을 꾸고, 꿈 속에서 피투성이의 작은 사람들이 시체에 붙어있는 장면을 보고 일어나서는 공포에 질려있는 것이 어떤 건지. 약국에 가서 임신 테스트기를 사서 당장이라도 근처 화장실에 가서 테스트를 하고 결과가 뜨기까지의 그 20초 가량의 시간 동안 머릿속에서는 몇 번씩 내가 아는 테스트기 사용방법을 점검하고, 두 줄이 임신인지 한 줄이 임신인지를 떠올리는지.

그들이 아 젠장, 어쩌지? 하고 있는 동안 뱃속에 아이를 갖게 된 한 청소년은 세상이 무너질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생리하기 전 내가 했던 섹스를 떠올리며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 인생의 앞길까지 주욱 펼쳐지겠지. 세상은 그녀한테 말할 것이다. ‘어린 게 발랑 까져서’ ‘다 큰 년이 자기 몸하나 간수 못하고’ ‘키울 자신도 능력도 없는 게 섹스는 왜 해?’ 수 많은 말들을 들으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자신을 원망하고, 부모에게도 말할 수 없고,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현실을 원망하지 않을까? 

낙태를 한 여성들. 그리고 내 또래의 여성 청소년들이 임신중지를 쉽게 선택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충분히 아팠을 거고, 충분히 죄책감에 짓눌려 힘들었을 거다. 아이를 낳았을 때의 사회적 위치도 환경도 경제도 아무것도 부담해주지 않는 사회에서 출산을 선택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범죄자라는 낙인은 너무 잔인하다. 경제활동이 금지된 청소년들, 인생의 거의 모든 선택을 자신의 손으로 할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청소년들이 이미 문제가 일어난 그 상황에서 그 데미지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문제에 대해 했던 선택을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경제적으로 그마저 하지 못하게 막게 되었을 때에는, 요즘 많아진 영아유기라는 일까지 벌이게 되는 것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봤으면.

덧붙이자면 불법이 되어버려 수술을 받기도 힘들고, 금액도 점점 오르면서 가장 고통 받을 건 청소년이든 저소득층이든 사회 아래쪽의 여성들이 될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어 속상해지는 요즘이다.



솔직히, 당신도 하고픈 말 있잖아요~ 여자들의 목소리로 솔직히 말하기 시작한다면, 낙태를 둘러싼 지금의 혼란을 풀어낼 수 있을 것 같아서 시도한 꿍꿍이였습니다. 어쩌면 생뚱맞을지도 모를 우리의 말걸기가 과연 화답을 불러낼 수 있을까, 머뭇거리기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 공감하고 또 함께 말하고 싶은 분들은 메일로 글을 보내주세요. 일기나 낙서면 어때요. 그림이나 사진,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말하기를 환영합니다. 우리들의 말하기가 낙태에 대한 처벌과 낙인을 이겨낼 수 있도록 함. 께. 말. 해. 요.

http://www.glocalactivism.org _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NGA)에서는 <2011년 글로컬 페미니즘 학교 수강생>을 모집 중입니다. 관심 있는 분의 많은 지원 바랍니다. 문의: 02-593-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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