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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솔까말] [8] 낙태, 죄인이라는 낙인에서 권리로... (김소영) (12.27)
나영 | 2011-03-18 | 1356
낙태, '솔/까/말' 프로젝트*** 낙태를 범죄화 하려는 움직임들에 반대하며, 낙태는 여성의 삶과 건강에 관한 문제라는 것을 솔직히 까놓고 말해보기 위한 릴레이 글쓰기 액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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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솔/까/말' 프로젝트----⑧ 낙태, 죄인이라는 낙인에서 권리로...
                                                                                           
김소영
낙태, 죄인이라는 낙인

두 번의 낙태를 했었다. 첫 번째 낙태는 몹시도 고통스러웠고 두 번째 역시 그랬다. 임신사실을 확인하고 낙태를 결심하는 과정까지, 첫 번째, 두 번째 모두 똑같이 심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고통스럽고 괴로운 과정이었다. 그나마 남자친구가 임신한 나를 외면하지 않고 함께 병원에 가주었으며 낙태를 위한 비용을 지불했다는 것 정도에서 남자친구의 책임은 끝나있었다. 나머지 고통은 온전히 나의 몫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애까지 지우는 독한 년이라고 자학했고 누구라도 이 사실을 알까봐 직장에는 거짓말로 휴가를 냈다. 집에서는 그대로 직장을 다니는 것처럼 출근을 했고, 자취하는 친구 집에 잠깐씩 몸을 누였다. 영화에서나 보던 낙태를 한 이가 나였고 그런 나는 그냥 숨겨져야 하는 존재 같았다. 그 때까지 나는 그냥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임신에 대한 어떤 대비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은 그냥 내가 혼자 감당해야 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로부터 최근까지 낙태사실에 대해 털어놓고 이야기한 적은 거의 없었다. 머리로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었으나, 가슴으로 나는 죄인이었으니, 생명을 죽인 죄인이었다. 그 생각을 떨쳐내기는 몹시도 힘들었다.



여성이 “나는 낙태를 했습니다(I had an abortion)”는 문구를 담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미련한 짓이었다. 하다못해 누구한테든 털어놓아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속은 후련했을 텐데. 그러나 나는 엄마나 여동생에게는 말을 꺼낼 생각도 못했고, 친구들에게조차,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여성동료에게도 내 고통에 대해 조언 받을 생각을 못했다. 그나마 여자대학교를 다닌 여성들은 임신이나 피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낙태를 선택할 때 이런저런 조언을 받는다는 건 아주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중고등학교에서 하는 정말 형식적인 성교육 이후, 나는 피임, 임신, 낙태에 관한 정보를 가질만한 공식적인 기회가 거의 없었던 듯하다. 물론, 다시 한 번 소심하게 굴자면, 내가 똑똑하지 못해 그런 정보를 알고 찾아다니지 못한 것도 있겠다. 그러나, 실제로 과연 그런 기회가 있다 하더라도 미혼여성들 중 과연 임신, 피임, 낙태에 관한 일을 제 일처럼 여겨 정보를 득달같이 챙겨가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장담컨대, 임신테스트 막대기에 뜬 보라색 두 줄을 확인하고 나서야, 뒤늦게 자신의 무지를 자책하며 어찌 산부인과를 혼자서 갈 것인가, 허벅지를 찔러가며 후회하는 게, 임신을 알게 된 (특히 미혼) 여성들의 첫 표정일 것이다.



▶ 임신테스트 막대기, 2줄이 나타나면 임신을 뜻한다.

왜 그들은 피임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왜 그렇게 무식했을까? 라고만 생각하다가 문득 억울해졌다. 두 번의 낙태를 경험하면서 나는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주위사람을 모두 속이는 것 같았고, 엄마에게 죽도록 미안했고, 미래에 생길 내 아이에게 뭔가 잘못하는 것 같았고, 내가 다시 임신을 할 수 있을까, 걱정에 시달려왔다. 지금에 와서 나의 무식과 무지를 다시 통탄하며 다시 나를 죽일 수는 없다. 왜 나만 아파해야 하나? 왜 나만 죄를 저질렀고 잘못이라는 건가? 왜 나만 이렇게 고통스러워야 하고, 왜 나만 이렇게 죄를 지어야 하나? 정작 피해와 상처, 고통으로 몸부림친 건 나였다. 고스란히 아파하고 몸져누워있던 건 온전히 나 혼자였다. 그러니 질문을 돌려보자. 도대체 왜 그 남자는 피임을 하지 않은 건가? 나보다 나이도 많던 그 남자친구는 왜 피임을 안 했나? 왜 남성들은 피임을 하지 않는 것인가?

그들이 대답할 선택지가 많지는 않다. “(피임방법을) 몰라서”, “(피임도구가) 없어서”, 또는 “(피임하기가) 싫어서”. 여기서 “피임도구가 없었다”는 대답은 “피임방법을 알았으나 도구가 없었다”는 뜻으로 해석되거나 피임의 의지문제로 치환(사오면 될 일이다!)될 수 있다. 혹은 백번 양보해서 “피임도구가 그것뿐인 줄 알았다(설마... 정말?)”로 해석될 수 있겠다. 그러니, 결국 그들의 대답은 “몰랐다” 아니면 “싫었다” 둘 중의 하나가 되는 셈 아닐까.

그나마 “몰랐다”는 대답이 “싫었다”는 대답보다 더 많기를 바라야 할까... 책임회피를 위해 “몰랐다”고 둘러댈 가능성을 생각하더라도, 그게 ‘교육을 통한 개선의 여지’는 클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면, “싫었다”가 더 많기를 바라야 할까... “몰랐다”에서 “싫었다”로 넘어간다는 건 적어도 성관계에서 피임의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고, 성관계에서 여성이 주도적으로 피임협상을 해내기는 몹시도 힘든 일이니까.

이래저래 재보고 추측해 봐도 마지막까지 억울한 것은, 남성들은 피임을 하지 않았다고, 여자 친구가 낙태를 하게 했다고 욕먹고 범죄자 취급을 당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성관계는 함께 해도, 범죄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대다수 여성이다.



콘돔을 통한 성교육의 한 장면

몰랐던 거 알면 되나, 중요한 건 교육인가

지금도 의문스러운 것은, 첫 번째 낙태를 한 후, 왜 그 의사는 ‘우리’에게 피임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피임법에 대해 최소한이라도 환기시켜주고 강조했다면, 어찌됐든 두 번째 낙태를 막을 가능성이 조금은 높아질 수도 있었다. 당장 낙태를 받은 산부인과 의사조차 피임법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불법낙태라는 사실을 지적해주지도 않는 마당에, 낙태를 하는 여성들만 사후에 범죄자 취급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임신과 피임, 낙태에 대해 얻는 정보경로가 ‘경험과 체험’ 조금 더 나아가 ‘인터넷’ 말고는 딱히 의지할 곳 없는 이 한국 사회에서, 저출산에 낙태율이 높다고 일부 의사들이 개탄만 할 일이 아닌 것이다.

그래, 나도 몰랐고 너도 몰랐다면 아는 게 힘이겠지. 그렇다면 가장 쉽게 떠오르는 해결책은 남녀를 불문한 교육의 실질적인 시작일까. 중고등학교, 아니 요즘은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도 성교육을 한다지만, 그 과정은 일 년 중 일회성으로 진행되는 의무적 요식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육의 힘은 일관성 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데 있다. 성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과 토론은 애들이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시작해서, 초경, 첫 성관계, 임신, 출산할 때까지, 꾸준히 지속적으로 그리고 비중 있게 구축되어야 할 인프라 중의 인프라다. 의무교육기관의 정기적인 커리큘럼 제공, 교육기관 내 교사들을 위한 재교육프로그램 실시,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상담프로그램 확보 등은 당연히 전제되어야 할 조건인 것이다. 교육 하나만 놓고서도 할 일은 엄청나다.

여성과 건강, 교육과 보건의료의 만남

그러나 교육만 시작한다고 문제가 해결되길 바라는 건 무리다. 교육을 한다 해도, 당장 여성들이 임신했을 때 누구를 만나고,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여중생이 임신했을 때, 그녀 주위에 도움을 받을 사람이 있는가? 교육을 백날 해봐도, 실제로 성관계를 가질 때 남성이 감촉 떨어진다고 콘돔 끼기 싫다고 버티면, 여성은 어째야 하는가? 임신한 여성이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낙태를 원할 때 의사가 거절하면 어째야 하는가? 실제로 어린이, 청소년기, 가임기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변화가 생길 때 적절하게 대처하고 있는가? 이 모든 질문들은 하나도 녹록한 것이 없다.

그러나 내 권리를 알고 내 권리를 일상적으로 누릴 때 정치적 경험은 성장해갈 수 있다. 건강할 권리로서 나의 권리. 시도 때도 없이 병원과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산부인과가, 남들 눈치 보면서 못 갈 데 가는 것처럼 쉬쉬하며 다닐 곳은 아니지 않냐는 말이다. 솔직히, 산부인과는 여성과 가장 친밀해야 하는 공간이자 기관이지만, 미혼여성들에게 산부인과는 선입견과 편견, 미지의 대상일 뿐이다. 임신을 바라는 기혼여성이 아니면 그닥 반가운 곳도 아니다.



여전히 멀게만 느껴지는 산부인과, 우리는 보다 당당하게 산부인과에 드나들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산부인과에서 가임기 미혼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피임, 임신, 낙태, 출산에 대한 일련의 프로그램들이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여기에 참가하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초경 시작한 여자어린이부터 대상으로 피임교육과 실습을 시키고 산부인과 연계해서 피임-낙태상담센터도 만들어야 하지 않나. 불임클리닉도 있는데 낙태클리닉이 없으란 법 없다.

내 몸의 상태를 잘 알고 원하는 임신을 할 때 여성은 건강하게 출산할 수 있다. 피임, 임신, 낙태, 출산, 그 어떤 것이든 이 기본적인 내 몸의 상태를 알고 나의 임신의지를 묻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이를 위한 교육과 일상적인 보건의료서비스가 맞물려갈 때, 최소한 여성이 건강할 수 있는 피임, 임신, 낙태, 출산의 조건이 마련되는 것이다. 나를 돌아봐도, 산부인과에서 상담프로그램이라도 해줬으면 그렇게 피폐하고 힘들게 그 시절을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기혼여성들을 위해서는 임신, 유산, 낙태, 불임, 출산, 신생아 돌봄에 대한 일상프로그램이 필수적이겠다. 이렇게 되려면, 당연히도 국가적 차원에서 보건의료시스템과 산부인과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서도 고려를 해야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임신했다 출산한 내 후배도 비싼 산후조리원 다닌 이후에, 애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몰라, 산후 몸조리하기에도 바쁜 나날을 쪼개가며 좌충우돌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가 임신한 여성들을 위해, 출산지원금 달랑 던져주는 것 이외에 그 흔한 예비엄마아빠 교육도 무료로 안 해주면서, 애는 낳아서 누가 키우나? 출산보조금 20만원이 키워주나? 그것도 같은 서울에서도 지역구마다 지원금 액수도 다르던데. 이 경제위기 시대에, 없는 집에 애 생기는 걸 어떻게 감당하라는 것이며, 구립어린이집도 안 늘리고, 영유아예방접종 예산도 깎아먹으면서, 누구 보고 범죄자라고 질러대는 건가.




 
 [9] 여성청소년이 바라보는 낙태 (2.9)
 [7] 임신중지를 둘러싼 우리 얘기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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